삼대가 나란히 대전이쥬
제법 서늘해진 날씨에 묵혀두었던 두툼한 옷들을 꺼내봅니다. 부모님, 아이들과 함께 대전 여행을 떠나기로 한 날, 날씨 대비를 잘못하면 자칫 감기에 걸릴지도 모를 일이니까요. 아침과 한낮의 기온차가 제법 커서 입고 벗을 수 있도록 옷 채비를 합니다. 동네 산책만 가볍게 다니시던 부모님이 더 들떠 보이시네요.
여행이 주는 즐거움도 그렇지만, 고물고물 귀여운 손주들과 함께 하는 오랜만의 여행인지라 기쁘신 것 같습니다. “할머니! 제가 코코아도 챙겼어요!” 자기 간식거리를 챙겨 넣으며 할머니, 할아버지 몫도 같이 챙기는 7살 막내아이의 목소리도 한껏 높아져있네요.
- 계룡산국립공원 수통골
- 유림공원
- 유성온천공원 족욕체험장
- 유성구 죽동 카페거리
- 유성온천역 인근 스카이라운지
스토리텔링
여행준비
청주에서 대전까지는 30분이 채 걸리지 않습니다. 우리 부부와 부모님, 두 아이들까지 총인원 6명이 함께 하는 여정이기에 이동거리가 부담스럽지 않아 만족스러운곳이기도 하죠. 세대를 만족시킬 만한 여행지들도 고심하며 일정을 준비했는데, 가족들의 마음에 들지 궁금하네요. 이런저런 생각들로 걱정 반, 설렘 반 싣고 차에 오릅니다. 이미 차 안에서는 아이들만의 여행이 시작됐네요. 준비해온 과자와 과일을 꺼내서 나누며 왁자지껄, 들썩들썩 요란스럽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아이들도 여행다운 여행을 해 본 지 꽤 오래된 것 같네요. 아이들은목적지가 어디인지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듯, 그저 가족여행을 떠난다는 자체만으로도 ‘업’ 돼 있습니다.
코스 소개
가슴 속 시원해지는, 힐링 숲길
첫 번째로 닿은 곳은 대전 유성구 계룡산국립공원에 위치한 수통골. ‘맛집’ 많기로 인근에 소문난 곳이라, 지인들과 식사를 하려고 찾은 적은 있지만 여행으로는 처음입니다. 몇 년 만에 다시 찾은 수통골 입구는 그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은 모습으로 여행자를 반겨줍니다. 수통골은 ‘골짜기가 깊고 물이 통한다’고 붙여진 이름으로 계룡산 동쪽에 위치해 있습니다. 계룡산국립공원 표지석앞에서 가족여행의 시작을 알리는 인증사진을 남겨봅니다. 힘이 펄펄 남아도는 아이들은 온갖 포즈를 취해가며자기들만의 여행 추억을 만드는 중입니다
입구에 들어서니, 평일임에도 제법 사람들이 있습니다.단풍이 서서히 물들어가는 시기여서 인가 봅니다. 등산객들은 등산화까지 갖추고 길을 나서지만, 우리는 누가봐도 산책을 즐기러 온 행색입니다. ‘등산은 싫다’고 단호히 자기 의사를 밝힌 꼬맹이 덕분에 산책로만 걷기로출발하기 전부터 약속을 한 터. 아쉽긴 하지만 왕복 1시간 정도로 여정을 계획하고 걸음을 시작합니다.
계곡을 중심으로 나무 데크 산책로가 잘 정비돼 있습니다.잔잔하게 계곡물 흐르는 소리를 들으며 산책길에 나서 봅니다. 길을 따라 양옆으로 곱게 물든 단풍들이 우리 가는길을 함께 해주네요. “여기만 와도 공기가 다르네.” 부모님도 숲길 산책에 마음에 드신 듯 연신 감탄사를 터트리십니다. 깊게 호흡을 하며 걸으니 폐부까지 맑은 공기가 닿는 느낌입니다. 저 앞에까지 뛰어가 우리를 기다리던 아이들이 지쳤는지, 우리랑 걸음을 맞추기 위해 기다리고 서있네요. 걱정과는 달리 7살, 10살 아이들이 제법 잘 걸어줘서다행입니다. 여차하면 막내는 안고 걸어야 하지 않을까, 마음의 준비를 해두었는데 안도감이 듭니다.
계곡, 골짜기마다 굽이굽이 녹아든 단풍 빛을 실컷 감상하고 ‘이제 돌아가자’고 채근하는 아이들을 달래가며 길을 되돌아갑니다. 흔들의자에 앉아 시간도 보내고, 바닥에 떨어진 단풍잎도 몇 개 주워 이 가을을 보내는 아쉬움을 달랩니다. 왕복 1시간 여, 길다면 길었던 산책길이제법 힘들었는지, 아이들이 지친 기색을 보이며 칭얼거리네요. 이럴 때 답은 하나죠. ‘맛있는 거 먹자’며 달래는것뿐입니다.
국화향기 머금은, 공원을 거닐다
맛있는 음식으로 배를 채웠으니, 새로운 여정지로 향해야겠죠. 대전 유성구청 바로 맞은편에 위치한 유림공원을 찾아 가을 정취를 만끽해볼 생각입니다. 10월 17일부터 11월 8일까지 국화전시회가 열리고 있다는 정보에 마음이 동해서 일정에 넣은 곳이기도 합니다. 원래는 유림공원 내에 국화축제로 진행됐지만, 올해는 코로나19로인해 유림공원, 온천공원 등 30개소에서 전시회 형식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하네요. 약간의 아쉬움은 남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죠.
축제의 형식과 규모가 줄어들긴 했지만, 국화 내음만큼은 여전한 것 같습니다. 가을 향내 듬뿍 남은 국화 향기가걷는 걸음마다 코에 닿네요. 공원 한 켠에는 요즘 SNS에서 유명한 핑크뮬리 군락도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런 곳을 놓칠 리 없는 아이들이 먼저 포즈를 취하고 사진 찍기를 요청하네요. 평소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시지 않는 아버지도 손주들의 제안에는 흔쾌히 ‘오케이’ 하십니다. 준비해간 삼각대를 세우고 가족 모두가 함께 서서 사진을남겨봅니다. 우스갯소리처럼 ‘남는 건 사진뿐’이라고 하지만, 사실 시간이 지난 후에 가족끼리 함께 찍은 사진 한장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릅니다. 사랑하는 아이들과 부모님이 함께 한 사진은 두고두고 우리 가족에게 잊지 못할 추억거리를 제공하니까요.
유림공원 내에는 국화꽃으로 만든 전망대와 조형물들이자리잡고 있습니다. 국화로 한복을 꾸며 입은 남녀 조형물은 얼굴에 마스크까지 하고 있어 ‘우습고도 슬픈’, 요즘말로 ‘웃픈’ 감정을 갖게 합니다. 아이들은 이 조형물을보며 웃어대지만, 마냥 웃을 수만 없는 것이 어른들 마음이죠. “언제쯤 아이들이 마스크를 벗고 학교 갈 수 있겠냐, 아이들이 젤 불쌍햐”라며 말씀하시는 부모님 말씀에마음 한 구석이 짠해집니다.
쉬다 걷다를 반복하며 한반도 모양의 인공호수인 ‘반도지’로 향합니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물레방아가 아이들시선을 사로잡습니다. 호수 주변에는 코스모스, 국화, 갖가지 수생식물이 어우러져 가을 볼거리를 만들어내네요.“우와, 거북이 있어요!” 큰 아이가 소리쳐서 보니, 정말 아이 손바닥만한 조그만 거북이가 연못 속에서 부지런히헤엄쳐 다니고 있습니다. 잉어도 보이네요. 꽃놀이에 시들해져 있던 아이들이 이곳에 와서 다시 기운을 내 떠들어대기 시작합니다. 왜가리도 자주 보인다고 하는데, 우리가 갔을 때는 왜가리는 만날 수 없었습니다. 아이들은이곳에서 만난 귀여운 생명체들에 정신이 팔려 한동안뜰 생각을 하지 않네요.
피로를 날리는, 특별한 휴식
이른 아침부터 움직여 걷기 시작했더니 제법 발바닥에 뜨끈한 열기가 느껴집니다. 이제는 수고한 발에 호사를 누리게 해 줄 시간. 유림공원에서 차로 5분 여 거리에 유성온천공원 족욕체험장으로 향합니다. 온천을 좋아하시지만 요즘에는 가시지 못하는 부모님의 마음을 달래드리기위한 일정이기도 합니다. 족욕이라고 하자, 큰 아이가 물놀이라도 가는 줄 알았는지 흥분하기 시작합니다. “여기는 물장구 치고 노는 데가 아니라, 점잖게 앉아 있어야 하는 곳이야.” 들어가기 전 아이들에게 단단히 일러둡니다.
노천에 자리한 족욕체험장에 들어서 자리를 잡습니다. 사람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거리를 두고 띄어 앉는 것이 기본 수칙. 마스크도 필히 착용해야 합니다. 유성온천에서 사용되는 약알칼리 40도씨 온천수에 발을 담그자 “으어~~”하는 소리가 절로 터져 나옵니다. 아이들은 온천수에 발을 넣자마자 뜨겁다며 발을 빼내버립니다. “천천히 발 넣고있어봐. 곧 익숙해질 거여.” 할아버지의 조언대로 아이들도천천히 발을 넣어 보지만 참기 쉽지 않은 모양입니다.
발을 담근 지 5분쯤 지나자 몸이 뜨끈해지는 느낌이 듭니다. 송글송글 맺히기 시작하는 땀을 선선한 가을바람이곧 식혀줍니다. 온몸을 온천물에 푹 담그고 즐기는 온천욕에 비해 못할 거라 생각했던 족욕의 즐거움이 꽤나 크네요. 발을 담그고, 흐르는 구름 쳐다보니 신선놀음이 따로 없습니다. 15분쯤 여유를 즐기며 족욕을 한 뒤 자리를뜹니다. 나서는 길에 대전시티투어 승강장이 보이는 걸보니, 차 없이 시티 투어 코스로 들러도 좋을 듯싶습니다.
- 유성온천공원 족욕체험장
- 유성구 봉명동 574 일대
- 042-611-2445
커피 향 가득한 거리를 거닐다
차(茶)를 좋아하는 아내가 대전에 가게 되면 꼭 들르고싶다고, 벼르던 곳. 유성경찰서 뒤편, 죽동 카페거리입니다. 거리상으로는 유성온천 지척인데, 분위기는 전혀 다릅니다. 아내의 제안에 못이긴 척 따라나섰는데, 막상 와보니 사실 제가 더 설렙니다. 제가 대전을 찾았던 몇 년전만해도 대전 ‘핫플’은 충남대 앞 궁동으로 알고 있었는데, 이제는 궁동에 이어 죽동까지 떠오르는 핫 플레이스가 되어있네요. 대학로에서 시작된 감각적인 카페들이인근 주택가까지 확대돼, 대전을 대표하는 거리가 되었습니다. ‘SNS 좀 한다’는 사람이라면 이곳에 들르지 않을 수 없겠더군요.
비슷한 듯, 각기 다른 개성으로 무장한 카페들이 골목골목마다 자리하고 있네요. 아내와 단둘이 찾았더라면 골목을 누비며 이곳저곳 들여다보고 싶지만, 오늘은 참아야할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벌써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어디로 갈 거냐’며 성화네요. 수십 여 곳의 카페 가운데 우리 가족이 선택한 곳은 붉은 벽돌로 둘러싸인 이국적인 풍경 속입니다. 문을 열자마자 벽면을 채우고 있는수많은 장식품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자리 잡기가 무섭게 어머님과 아내가 그곳으로 가, 갤러리에서 작품을 감상하듯 서성거립니다. 20여 년 넘게 그라인더, 티포트,그릇 등 앤티크 소품을 모아온 수집가 사장님의 컬렉션규모에 입이 떡 벌어집니다. ‘판매는 하지 않는다’는 말에 아내는 아쉬워하고, 전 안도했습니다.
홍차가 유명한 곳이라 어른들은 홍차를 주문하고, 아이들은 사장님의 추천을 받아 수제 플레인요거트를 먹기로 했습니다. ‘홍차는 다 같은 홍차’라고 생각했던 저는,20여 가지의 홍차 메뉴가 펼쳐지자 정신이 아득해집니다. 다행히 아내가 원하는 향과 맛에 따라 추천을 해줘서 ‘사과향이 나는 영국산 홍차’를 선택했습니다. 홍차를주문하면, 직접 고른 티포트에 차를 담아주십니다. 차를마시며 시선이 머무르는 곳곳을 천천히 감상합니다.
야경과 함께 하는 낭만적 디너 타임
볼거리 많은 죽동 카페거리를 떠나기 아쉽지만, 배고프면 화를 내는 ‘꼬마 상전’들이 있기에 저녁식사 장소로 이동합니다. 시간이 제법 흘러서 어둑어둑해져 가는 시간인지라, 지금쯤 가면 야경을 보기에 딱 좋을 것 같네요.
야경과 함께 분위기 있게 식사할 수 있는 스카이라운지레스토랑이 저희 가족의 마지막 여정입니다. 사실 제 취향대로라면 유성온천 관광지 주변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노포 맛집에 들를 테지만, 이번 여행은 저만의 여행이아니니 뒤로 미뤄둡니다. 차치해둔 일정들이 많아 조만간 또 대전에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호텔에 위치한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예약해둔 자리로안내를 해주십니다. 주머니 사정이 걱정되셨는지 어머님이 옆구리를 찌르시며 “백반집이나 가지. 이런 비싼 데를왜 왔냐.”며 타박이시지만 내일이 되면 친구들에게 전화걸어 ‘아들 덕에 좋은 데 다녀왔다’고 자랑하실 걸, 전 알고 있습니다. 안심스테이크를 주문했습니다. 이가 안 좋으신 어른들도 부드러운 안심인지라 부담 없이 드실 수있지요. 뭐, 돌도 씹어 삼킬 아이들의 식성에는 말할 것도없고요. 집에서도 스테이크는 종종 해먹지만, 호텔 셰프의 솜씨는 따를 수 없습니다. 시즈닝 잘 된, 육향 가득한스테이크 맛이 기대 이상으로 훌륭합니다.
갑천과 유성온천 일대 야경이 내려다보이는 스카이라운지에서 즐기는 식사는 여행의 마무리로 더할 나위 없습니다. 직원분께 부탁드려 마지막 여행 인증사진도 남겨야지요.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 들으며, 그렇게 3대가함께 한 대전 나들이를 마무리합니다. 바쁘게 움직였던하루였지만, 그래도 지치지 않고 잘 따라준 가족들이 고맙네요. 사는 곳과 가깝다는 이유로 미처 관심을 두지 못했던 여행지로서의 대전, 집에 가면 대전 지도 펼치고 구석구석 다시 한 번 갈만한 곳을 탐색해 봐야겠습니다. 잘먹고, 잘 놀다갑니다.
유성온천역 인근 스카이라운지
3대가 함께 길을 나서는 게 참 쉽지 않죠. 세종에 서울에 대전에 뿔뿔이 흩어져 사는 우리 가족도 그렇습니다.
명절이 아니면 한 번 얼굴보기도 어렵지만, ‘어딜 가야 하나’ 생각하면 더 어려운 일인데요. 이곳이라면 낯설지 않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부모, 아이들 등 3대가 함께 와서 문화관광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뿌리 찾기에 열중하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어느덧 개장 20년을 훌쩍 넘긴 뿌리공원입니다.
- 무수천하마을
- 무수천하마을(유회당 종가)
- 무수천하마을(유회당)
- 무수천하마을(여경암)
- 무수천하마을(전통 장 담그기 체험)
- 한국효문화진흥원
- 뿌리공원
- 뿌리공원(한국족보박물관)
- 성씨 조형물 언덕
- 은하수터널
스토리텔링
여행준비
휴가를 맞아 서울에서 세종으로 내려왔습니다. 부모님댁에서 편히 쉬겠다는 생각이었는데요. 이불속을 뒹굴다보니 할머니 얼굴이 무심결에 떠오릅니다. 생각이 났으면 바로 실행해야죠. “우리 할머니 모시고 뿌리공원이랑 근처 무수천하마을에 가요”. 예상대로 저의 제안은단박에 먹혀들었죠. 시작이 순조로우니 나머지는 일사천리였습니다. 고속도로(안영 IC)를 빠져나가 5분도 안되는 거리라 “우리 딸 칭찬해”라는 말도 덤으로 들었죠.사전예약도 미리미리 해두었는데요. 무수천하마을 체험을 곁들이면 더 알찬 3대 여행이 되겠더라고요. 감동 포인트도 콕 집어 두었는데요. 뿌리공원에서는 할머니 손을 꼭 잡고 흔들다리를 건널 것. 무수천하마을에서는 엄마와 장담그기 인증샷을 남길 것. 이제 남은 건 맛집 리스트 정도이겠죠?
세종에서 무수천하마을까지
세종에서 부모님 자가용을 타고 대전에 계시는 할머니를모시러 출발합니다. 오늘 낮 코스는 무수천하마을인데요. 뿌리공원은 해질녘에 가보려고해요. 웹서핑으로 본뿌리공원 경관조명을 놓치고 싶지 않았거든요. 야경으로여행을 마무리하고 공원 앞 식당에서 저녁을 먹어볼 생각인데요. 제가 골라놓은 한우, 냉면, 두부요리 중 할머니께서 드시고 싶은 게 분명 있겠죠? 뿌리공원에는 대전의3대 하천 중 유등천이 흐르고 있어서 운 좋으면 강물과야경을 내려다 보며 식사를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코스 소개
하늘 아래 근심 없는 마을, 무수천하마을
초입에 나란히 세워져 있는 목장승이 우리 가족을 반깁니다. 무수천하마을입니다. 목장승은 마을을 보호하는 수호신이자 이정표 역할을 한다고 하죠. ‘하늘 아래 근심없는 마을’이란 뜻을 가진 무수천하마을은 안동 권 씨집성촌으로 전통과 효 문화가 깃들어 있는 곳입니다. 마을에 들어서기 전부터 대도시 근교라는 게 믿기지 않을정도로 소박하고 정다운 농촌 풍경이 펼쳐집니다. 드넓은 논과 밭을 지나 조금 더 달리다 보니 다목적회관 앞에 마을 안내판이 보이네요. 이쯤에서 차를 세우고 할머니, 부모님과 함께 마을 일대를 천천히 둘러보려 합니다.
- 무수천하마을
- 중구 운남로85번길 5
- 042-285-5557
300년 숨결 품은 안동 권씨 마을
대전 중구 무수동이 안동 권 씨 집성촌으로 자리 잡은 건언제부터였을까요. 알려진 사실로는 조선 영조 때 호조판서를 지낸 유회당 권이진 선생이 처음 이곳에 터를 잡은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해요. 권이진 선생은 우암 송시열 선생의 외손자로 효심이 매우 깊은 인물이었습니다.현재는 안동 권 씨 후손 28가구가 이곳에 거주하며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데요. 300여 년의 세월을 간직한 만큼 마을 곳곳에는 다수의 문화재가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다목적회관에서 마을 입구 쪽으로 조금 걷다 보니 보문산 자락에 아늑하게 자리한 유회당 종가가 보이네요. 유회당 종가는 화재로 소실되었던 것을 1788년 후손들이현재의 자리로 옮겨지었습니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봅니다. 안채와 사랑채, 사당으로 이뤄져 있는데요. 지금은 비어 있는 듯 해요. 양반가의 가옥이지만 소박한 품격이 느껴지는데요. 자연을 벗 삼아 청렴하게 살고자 했던선비 정신이 어렴풋이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유회당 종가 앞에는 고택의 운치를 더해주는 은행나무와연못, 초가지붕을 얹은 정자가 자리하고 있는데요. 정자의 이름은 광영정으로 조선 영조 때 지어졌다고 해요. 자세히 보니 못을 하나도 사용하지 않고 나무에 홈을 파서 일일이 끼워 맞춘 흔적이 보이네요. 예전에는 어르신들만 낮에 이곳에 올라가 쉴 수 있었다고 하는데요. 젊은이들은 주로 밤에 이곳에서 서리한 수박을 먹으며 놀았다나요. 할머니, 엄마와 함께 잠시 광영정에 앉아 마을 경치를 감상해봅니다. 엄마는 “전주 한옥마을보다 훨씬 자연스러워서 좋다”고 말합니다. 배낭에서 물병을 꺼내 충분히 목도 축인 것 같으니 다시 발걸음을 옮겨볼까요.
애틋한 효심이 만든 아름다운 고택
유회당 종가에서 마을길을 따라 오르다 보니 언덕배기에근엄한 자태를 한 유회당이 보입니다. 층층이 높게 쌓인돌계단 위로는 대문이 우뚝 솟아 있는데요. 대문 한 가운데에는 ‘충효문’이라고 적힌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엄마와 함께 할머니 손을 잡고 조심조심 돌계단을 올라가 봅니다. 충효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뜻밖의 풍경에 탄성이 절로 나왔는데요. 아담한 연못에 물고기들이 유유자적 헤엄치고 있고 연못을 가로지르는 돌다리 너머로 고즈넉한 고택들이 보입니다. 정원의 돌다리를 건너자 비로소 유회당 고택이 눈앞에 모습을 드러내는데요.
유회당은 권이진 선생이 부모의 묘를 관리하기 위해 세운 곳으로 자신의 호를 따서 이름 지었다고 해요. ‘유회(有懷)’에는 늘 부모를 생각하는 효성스러운 마음을 품고 싶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주변에 오래된 소나무와배롱나무가 고즈넉한 풍경을 완성해주고 있네요. 유회당 안에는 제사를 지내는 기궁재와 묘를 지키기 위한 건물인 삼근정사가 있습니다. 부모를 참배하기 위한 고택을 지었다니 새삼 정성스러운 효심이 느껴집니다.
배롱나무가 있는 숲속 사찰 풍경
유회당 뒤편으로 1km가량 산행을 하면 사찰이 있습니다. 그냥 지나치기 아쉬워 차를 타고 이동했습니다. 꽤경사가 높은 구불구불한 산길을 따라 오르니 산 중턱에자리 잡은 사찰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현판에는 여경암이라고 쓰여 있네요. 사찰 앞에 있는 오래된 배롱나무한 그루와 파란 하늘이 한 폭의 그림 같은 절경을 이뤄냅니다. 돌계단을 올라 사찰 안으로 들어가 보았는데요.불당은 한두 사람이 서서 절할 정도로 규모가 작습니다.
마침 이곳을 지나던 스님께 이야기를 전해 들을 수 있었는데요. 당초 여경암은 권이진 선생이 부모의 묘를 보호하기 위해 세운 암자였으나 이후에는 후손들의 교육 장소로 활용되었다고 해요. 여경암 앞에는 옛 서당 건물로사용됐던 ‘거업재’가 있는데요. 현재는 스님들께서 승방으로 사용 중이라 일반인 출입은 금지되어 있다고 해요.여경암 뒤편으로는 산신당이 있는데요. 설날이나 정월대보름 같은 명절이 되면 마을 사람들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산신제를 지내기도 합니다.
구수한 옛날 고추장 맛
무수천하마을은 농촌전통테마마을로 농사, 공예, 전통음식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어요. 오늘은 다목적회관에서 이뤄지는 ‘고추장 담그기’ 체험 행사에 참여했습니다. 고추장에 들어가는 고춧가루, 청국장가루, 조청은 마을에서 직접 키우고 만든 것이라고 해요.마을 사무장님의 안내에 따라 재료를 넣고 한참을 저어줬는데요. 진땀을 빼는 모습을 할머니가 재밌다는 듯이지켜보고 있네요. 고운 빛깔로 완성한 고추장은 한 통씩집으로 가져갈 수 있었어요.
마을을 그냥 떠나기 아쉬워서 들어올 때 봐두었던 식당으로 걸음을 옮깁니다. 식당의 대표 메뉴인 백반을 시켰습니다. 가격은 1인분에 6,000원으로 반찬은 정해져 있지 않고 그날그날 다르게 나옵니다. 오늘은 나물무침, 멸치고추볶음, 오이무침 등 7가지 반찬에 김치찌개와 밥이 나왔습니다. 소박하지만 잘 차려진 시골 밥상 같은느낌이 드네요. 밥을 먹다 손수 만들었던 고추장을 꺼내밥을 비벼 먹었습니다. 평상시 먹던 고추장 맛과는 다른 느낌인데요. 달짝지근한 맛보다는 구수한 맛이 돌더라고요. 할머니 표현으로는 ‘옛날 고추장 맛’이라고 하네요. 어쩐지 든든하고 푸근해집니다. 고추장도, 밥도, 이마을도 말이에요.
마음에 담고 싶은 얼굴
무수천하마을에서 약 15분을 달려 뿌리공원(효월드)에도착했습니다. 유등천변에 널찍하게 마련된 주차장에차를 세우고 숨을 크게 들이마셔봅니다. 막힌데 없이 사방이 시원합니다. 천변의 자전거길로 가을바람을 가르며 달려오는 라이더들이 부럽네요. 서울살이에 지쳤던마음에 구멍이 숭숭 뚫리는 기분이랄까요. 아이 손을 잡고 산책을 나온 동네 주민들도 정겹습니다. 저도 할머니 손을 슬며시 잡아봅니다. 입구에서는 길이 두 갈래로나뉘는데요. 언덕 위쪽으로는 한국효문화진흥원이, 다리 건너로는 족보박물관과 뿌리공원이 보입니다. 입장료는 따로 없었어요. 연간 150만 명이 찾는 국내 유일의효 테마파크로서의 입지가 탄탄해지면서 2018년부터는 전국민 무료로 전환했다고 해요.
우리 가족은 한국효문화진흥원을 먼저 찾았어요. 무수천하마을에서 볕을 잔뜩 쪼이고 왔으니 쾌적한 실내활동도 좋겠죠? 건물 1~3층에 걸쳐 5개의 전시체험실이마련돼 있는데요. 각 실마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방문객을 맞이해주시더라고요. 안내에 따라 천천히 전시체험실을 둘러보았습니다. 그중 인상적이었던 건 제2전시실의 ‘미래의 나의 얼굴 체험’이었는데요. 태블릿PC로얼굴 사진을 찍어 앱에 넣으면 수십 년 후의 나의 얼굴을 볼 수 있어요. 엄마와 함께 체험을 해봤는데요. 할머니가 된 엄마의 얼굴을 보니 마음이 괜시리 찡하네요.
제4전시실 ‘담고 싶은 얼굴’은 투명 아크릴판을 사이에두고 앉아서 서로의 얼굴을 보드마카로 그리는 체험인데요. 처음에는 조금 쑥스럽기도 했지만 완성한 그림을보고는 모두 빵빵 터지고 말았습니다. 이어 가족사진이라는 뜻밖의 선물도 기다리고 있었어요. 스크린 앞에 나란히 서서 촬영하고 20초만 기다리면 무료로 인화된 사진을 즉석에서 받아볼 수 있습니다. 한참을 웃고 난 터라 그 어느때보다 환한 표정이네요. 제5전시실에서는‘노년생애체험’을 해볼 수 있는데요. 백내장/녹내장 안경을 써보고, 모래주머니를 차고 걸어보니 할머니와 보폭을 맞추는 일이 새삼 다르게 느껴지더라고요.
- 한국효문화진흥원
- 중구 뿌리공원로 45
- 042-580-9000
3대가 함께 걷는 길
오늘 여행의 대미를 장식할 뿌리공원입니다. 뿌리공원을 들어가기 위해서는 ‘만성교’라는 다리를 반드시 건너야 하는데요. 철교 아래로 흐르는 물이 훤히 보여서 제법 스릴이 있더라고요. 고개를 들면 보이는 한두름의 전경은 눈을 간지럽게 합니다. 굽이굽이 흐르는 강물과 나지막한 산이 공원을 감싸고 있는데요. 풍경은 눈에 담고손에는 할머니의 온기를 느끼며 천천히 다리를 건너봅니다. 공원에 들어서면 관광안내소, 스낵카페, 매점이 있는 건물이 보입니다. 건물 앞으로 탁 트인 잔디광장과,지붕을 얹은 벤치들이 소담스럽게 놓여있습니다. 매점건물에서 몇 발자국을 더 걸으면 족보박물관이 있고, 뒤쪽 언덕에는 뿌리공원의 하이라이트인 성씨 조형물들이곳곳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 뿌리공원
- 중구 뿌리공원로 79
- 042-288-8300
옛 사람을 향한 향수를 느끼다
초입에 있는 한국족보박물관에 먼저 들어갔어요. ‘족보’라고 하면 자자손손 물려오는 오래된 책 정도로 떠올리기쉬운데요. 한국의 족보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방대한가계(家系)의 기록입니다. 큰 역사의 흐름 속에서는 찾기힘든 사람에 대한 기록이자, 한 가정이 살아온 시대의 사료이지요. 족보박물관은 이런 족보의 가치를 재조명한다는 시각만으로도 무게감이 있었죠. 대전이라는 도시에 족보박물관과 세계 유일의 효 테마공원이 들어선 게 우연은 아닙니다. 대전에는 우리나라 전체 족보의 90%를 제작하는 출판사인 회상사(回想社)가 있는데요. 1954년 처음 문을 연 이래 대를 이어 원조 족보 출판의 맥을 이어오고 있죠. 이보다 앞서 조선시대부터 내려온 ‘충청도 양반’문화도 대전에서 뿌리를 내렸습니다. 수도인 서울과 가까워 중앙 진출이 쉬웠고, 자연환경이 워낙 좋아서 느긋하고 인심 좋은 양반문화가 자리잡았던 것이지요.
오로지 족보박물관에서만 볼 수 있는 유물들이 눈에 띕니다. 고려 김방경 장군의 후손들이 1580년대 간행한 안동김씨 성보는 박물관에서 가장 오래된 진품입니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족보책으로 1467년 발간된 안동 권씨 성화보의 복사본도 있습니다. 이외에도 돌로 만든 석보, 휴대용 족보, 나이 어린 외손까지도 빠짐없이 기록한 충주박씨의 자손보, 조선시대 문과·무과 급제자를 기록한 책등 저마다 다른 가계 기록의 정점을 보여줍니다. 시대별족보의 변천사 속에서 마음에 담아둔 문구가 있었는데요.족보가 무엇인지에 대한 물음에 힌트를 줍니다.
족보, 뿌리를 향한 그리움
(중략)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낳아주신
증조할아버지와 증조할머니…
아버지의 아버지, 그 아버지의 아버지를 찾아가는 것은
내 존재의 시원을 향한 그리움이었다.
- 한국족보박물관
- 중구 뿌리공원로 79
- 042-288-8310
형태로 만나는 나의 뿌리
족보박물관을 나와 고요해진 마음의 우물에 생각 한 줄기가 흘러들어 옵니다. 피를 나눈 3대의 동행. 그리고 뿌리공원. 시대를 넘어 여전히 답을 찾아 헤매는 질문 ‘나는 누구인가’. 아주 짧았던 사춘기 시절로 다시 시계를 돌린 듯 했습니다. 멀찍이서 저를 부르는 아빠의 목소리에 얼른 다시발걸음을 맞춥니다. 이번에는 아빠와 나란히 성씨 조형물을 찾아볼 시간이네요. 족보박물관에서 이미 위치를 대충확인해둔 터였어요. 엄마와 할머니는 종합안내도를 다시들여다 봅니다. 성씨 조형물이 모여있는 언덕에는 오솔길을 내놓아서 걷는 재미가 있습니다. 현재 244개의 성씨조형물이 자리하고 있다는데요. 참여하려는 문중이 많아서점점 규모를 늘려간다고 해요. 조형물들은 각 문중이 직접참여해 고유의 형상을 만들고 유래문을 기록해 두었습니다. 미술 조각품을 연상케하는 추상적인 형상부터 책을 닮은 조형물, 아예 성씨 자체를 형상화한 것까지 어느 하나같은 것이 없습니다. 이들이 담았을 문중의 자부심과 뿌리를 향한 뜨거운 마음을 따라, 뚜벅뚜벅 발자국을 찍어봅니다. 아빠와 나, 할머니, 엄마 이렇게 4곳의 조형물을 찾아보고 각 유래문을 읽어봅니다. 처음 했던 그 질문은 아무래도 가슴 한 켠에 담아서 가야할 것 같네요
작지만 화려한 공원의 야경
그 사이 어스름 해가 기울었습니다. 성씨 조형물 언덕을 내려오면서 공원을 한 바퀴 돌아나옵니다. 공원 내 선착장에는 아직 오리배를 타고 있는 가족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옵니다. 12지신으로 꾸며놓은 샘물에서 손을 적셔봅니다. 저멀리 우리가 건너온 만성교에 예쁜 조명이 켜집니다. 잘 가꿔놓은 정원에도, 잔디광장 주변 능소화 나무에도 알록달록 화려한 조명들이 환하게 불을 밝힙니다. 대전을 대표하는 야경명소의 장관이 펼쳐지는 순간인데요. 밤이 늦어도발길이 잦아들지 않는 이유라고 해요. 사실 공원에서 가려진 뒤쪽에는 아직도 사람들이 잘 모르는 빛 터널도 있어요.오월드로 가는 길과도 이어지는 길인데요. 물소리, 풀벌레소리 가득한 방아미다리를 건너면 마치 별빛이 쏟아지는것 같은 LED 은하수 터널이 등장합니다. 엄마와 할머니의얼굴에도 환하게 빛이 들어오네요. 놓치기 싫은 야경을 그림삼아 이제 그 어느 날보다 따뜻한 저녁을 먹으러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