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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은 지금

이야기가 있는 여행코스를 알려드립니다 스토리텔링 코스

루브르가 멀면 대전이쥬

대전에서 타지 생활을 한 지도 벌써 10년이 흘렀습니다. 이젠 제법 이 도시가 익숙해졌지만, 간혹 여행하는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여럿보다는 혼자서 돌아다닐 때 더더욱이요. 하지만 그런 기분이 싫지 않습니다. 오히려 평범한 일상이 특별하게 다가옵니다.
그래서 종종 ‘나 홀로 문화 산책’을 나섭니다. 예술의 전당, 미술관, 수목원 등이 하나의 거대한 문화예술공간을 이루고 있는 곳으로요. 다른 도시에서는 찾을 수 없는 ‘대전만의 낭만’이 바로 이곳에 있습니다.

  1. 대전시립미술관
  2. 대전이응노미술관
  3. DMA아트센터
  4. 한밭수목원

스토리텔링

여행준비

미술관에 가는 것을 좋아합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잡다한 생각을 떨쳐내고, 온전히 몰입할 수 있다는 것과작품에 담긴 이야기와 생명력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겉으로는 정적인 활동처럼 보이지만, 실은굉장한 에너지가 소모되는 것 또한 큰 매력입니다. 그래서 미술관에 갈 때면 편한 복장과 신발을 고집합니다.언제 어디서든 바로 깔고 앉을 수 있는 손수건도 필수입니다. 오랜만의 여가생활을 온전히 즐기기 위한, 저만의룰(?)이랄까요.

매일이, 여행

혼자 하는 여행은 시간에 구애받지 않습니다. 버스 차창에 스치는 느린 풍경들이 좋아지고, 얄미운 빨간 신호도 다용서됩니다. 오히려 평소에 없던 여유가 뿜뿜 샘솟습니다. 618번, 파란 버스는 달리고 달려 한밭수목원에 도착합니다. 주말이라 그런지, 승객 대부분이 이곳에서 내리네요. 굴러가는 나뭇잎만 봐도 까르르 웃음이 터지는 여고생들은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쉼 없이 떠듭니다. 엄마와함께 걷는 아이의 손에는 스티로폼 비행기 장난감이 들려 있습니다. 한창 무르익은 10월의 햇살이 내리쬡니다.관통하는 빛을 손으로 막으며 대전시립미술관으로 걸어갑니다. 오늘은 뚜벅이답게, 걸어서 모든 코스를 소화할예정입니다.

코스 소개

마음을 두드리는 ‘취미의 발견’

한껏 여유로운 주말, 대전시립미술관 앞 분수가 힘차게솟구칩니다. 살랑 부는 바람에 물방울이 흩날리고, 그 속에서 무지개가 피어납니다. 도심 속에 자리한 미술관이지만, 여기를 봐도 저기를 봐도, 시야가 뻥 뚫려있습니다. 시원하게 뻗은 건물은 청명한 하늘을 가로지르고, 그주위에는 넓은 잔디밭과 멋드러진 조각상들이 툭툭 놓여 있습니다.

이날은 ‘대전비엔날레 2020 인공지능:햇살은 유리창을잃고’ 전시가 한창이었습니다. 대전비엔날레는 대전시립미술관의 격년제 예술 프로젝트로, 과학기술 융복합영역에서 예술을 선보여 왔습니다. 올해는 인공지능을주제로 6개국 16명(개)의 작가(팀)가 참가했다죠. 티켓을 끊고 입장합니다.

전시는 시립미술관 1전시실부터 4전시실까지 주요 테마로 구분되고, 공동주최인 KAIST 비전관에서 별도의전시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대전비엔날레 2020은 비대면 전시 해설 어플리케이션인 A.I도슨트를 활용할 수있습니다. 도슨트나 도록을 접하는 것보다 작품과의 교감을 더 중시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저의 경우엔, 그때그때 다른 것 같아요. 특히 굉장히 창의적이고 실험적인현대작품들을 감상할 때는 작품 설명이나 오디오 가이드가 많은 도움이 되더라고요. 이어폰으로 듣는 대전비엔날레 2020은 어떤 모습일지 기대되는 마음으로 들어가 봅니다.

‘인공지능과 인지 사이’를 주제로 한 1전시실, 단박에 시선을 사로잡는 작품이 있었습니다. 신승백·김용훈 작가의 ‘넌페이셜 포트레이트’라는 작품인데요. 완성된 초상화에서 얼굴을 인식할 수 없어야 한다는 전제 조건 아래인간과 기계 사이에 존재하는 의식과 무의식을 실험하고있었습니다. 각각의 동영상 속에서 화가들은 미션을 수행하듯, 얼굴 없는 얼굴을 열심히 그려나가고 있습니다.

2전시실은 ‘인공지능이 태도가 될 때’가 주제입니다. 인공지능 개발연구에서 AI 스스로가 아닌 연구자의 역할이 얼마나 절대적이고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주는데요. 무엇보다 산업용 로봇을 앞세운 팀보이드의설치작품 두 개가 눈에 띄었습니다. 첫 번째는 ‘Super Smart Machine’. 마치 영화 ‘아이언맨’에 등장하는 인공지능 로봇을 보는 듯 신기합니다. 스위치를 ‘딸깍’ 올려봅니다. 인공지능 기술을 사용해 조명을 켜는 과정이꽤 과장되게, 여러 과정을 거쳐, 면밀하게 들여다보도록 되어있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Making Art-for Stock Market’입니다. 실시간 증권시세 데이터를 가공해 로봇팔이 그림을 그리고 사운드를 만들어내는 작품을 선보였는데요. 하루하루 다르게 흘러가는 증시에 따라 매일다른 그림이 완성된다고 합니다.

제3전시실은 ‘데칼코마니의 오류’, 인간을 모델로 탄생한 인공지능에 담긴 수많은 오류와 허점, 그리고 아이러니를 살펴봅니다. 박얼 작가의 ‘신경쇠약 직전의 기계들’은 작품 이름이 꽤 인상적인데요. 이는 특정 로봇만 계속 쫓아다니거나 자신의 덫에 빠져 계속 원위치로 돌아오는 로봇들을 통해 인간의 강박증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제4전시실로 이동합니다. 이곳은 새 시대의 도구인인공지능이 앞으로 나아갈 방향성을 함께 모색해봅니다. 불과 1~2년 전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끊임없이 변모하며 새로운 논제들을 만들어내고 있는 인공지능은실로 현재진행형입니다. 이러한 학습 패턴을 하나의 도구로써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예술가들의 시작점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과 KAIST와의 협업으로 이루어진구성도 색달랐습니다. 이병주 교수팀의 ‘스킨’은 접촉하는 무체에 대한 8가지 특성을 인공지능에게 학습시켜민감한 터치 표면에 관람객이 닿으면 상호작용하는 작품입니다. 컴퓨터의 비주얼 오디이주행 박사(한국전자통신연구원)는 자체 제작 코드로 생성한 디지털 파일을추상적인 이미지로 구현한 것이 흥미롭습니다.

모든 전시를 관람하고 나오니, 인공지능 체험프로그램‘두근두근 미술관’이 보입니다. 스마트폰에서 그림을 그리고 전송하면, 미술관 벽에 설치된 디지털 액자에 자신의 작품이 전시되는 관객 친화형 프로그램입니다. 관람객 누구에게나 작가로서의 기회를 제공하는 셈이죠.

대전을 흔히 과학의 도시라고 하잖아요. 그 특수성에 예술이 접목된 흥미로운 전시였습니다. 너무나 대전다운,대전을 위한 주제가 아니었나 싶어요. 일상에서 벗어나, 일상적이지 않은 무언가가 마음을 두드리는, 그런 설레는 경험을 만끽했습니다.

  • 대전시립미술관
  • 서구 둔산대로 155 둔산대공원
  • 042-270-7370
사부작 사부작 작품 속을 걷다

다음 방문할 곳은 천재적인 화가 고암 이응노(1904~1989)의 삶과 그의 예술작품을 기리기 위해 설립된 ‘대전이응노미술관’입니다. 크고 웅장한 예술의 전당과 시립미술관이 바로 이웃한 곳에 있지만, 결코 압도당하지않습니다. 오히려 하나의 단독적인 예술작품처럼 보이는데요. 프랑스 출신의 세계적인 건축가 로랑 보두엥이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설계한 미술관입니다.

반듯한 콘크리트 조각을 얼기설기 엮은 듯한 독특한 지붕은 이응노의 작품 목숨 수(壽)를 닮아있습니다. 그 틈새로 쏟아지는 빛과 그림자는 마치 한옥의 처마를 연상케 합니다. 그를 떠올리게 하는 것은 이뿐만이 아닙니다.미술관에는 유독 많은 대나무가 눈에 띄는데요. 이는 이응노의 이전 호가 죽사(竹史)였을 정도로 생전에 대나무를 많이 그렸던 것을 고려한 설계입니다.

이응노는 문자와 기호, 드로잉을 결합해 새로운 추상 양식을 발전시킨 화가입니다. 주로 종이에 먹으로 그림을그렸는데 전통적인 한국화가 아닌 추상화라는 점이 독특합니다. 캔버스에 다양한 재료로 콜라주 작업도 했는데 천 위에 한지로 작업한 콜라주 작품 ‘구성’은 거친 질감과 독특한 형태가 그대로 묻어납니다.

사부작 사부작 발걸음을 옮겨봅니다. 벽과 벽을 잇지 않아 각각의 전시실이 자연스레 하나로 연결되고요. 벽면과 천장을 통해 자연채광이 스며들죠. 비엔날레가 온전히 작품에 몰입할 수 있도록 외부와 차단된 느낌이었다면, 이곳은 사시사철 변화하는 자연색을 모두 품은 투명한 유리 건물이 탁 트인 개방감을 선물합니다. 아름답게조성된 연못과 나무도 감상할 수 있습니다.

대전이응노미술관은 이전에도 두세 번 방문했던 곳입니다. 그럼에도 다시 찾은 이유는, 새로운 예술과 이응노와의만남은 언제나 현재형으로 진행 중이기 때문입니다. 올해마지막 기획전시 ‘유연한 변주’는 디지털 시대의 고암 작품을 변주한 만큼, 전시장에는 3명의 작가가 모티브로 삼았던 고암의 작품 또는 유사한 세계관을 보여주는 작품이 동시에 전시되고 있습니다. 9월부터 미술관 외관에 ‘프로젝션 맵핑(빛으로 이뤄진 영상을 상영, 대상의 시각적 변화를 주는 기술)’이 상영되는 작품과 연계해 심도 있는 작가들의 세계, 고암과의 연결성을 찾는 기획전입니다.

강정헌 작가는 고암의 ‘군상’과 평행선에 있습니다. 강 작가의 작품에는 모든 인간이 ‘픽셀(Pixel)’형상으로 나타나는데요. 군상에 나타난 인간의 희로애락이 디지털 시대에는 픽셀이라는 것으로 변주돼 보인다는 발상인 셈입니다. 정화용 작가는 독창적인 시각 세계를 구현한 고암 작품의 계보를 잇습니다. 정 작가는 만화경처럼 흐르는 디지털 세계 속에서 승무를 추는 무용수의 몸짓 그리고 유년 시절의 기억과 상상이 모호해지는 시점을 영상화해21세기 시각 세계를 보여줍니다. 홍지윤 작가는 꽃을 매개로 퓨전 동양화라는 이색적인 시도에 나섰습니다. 오방색과 아크릴, 동양의 모필과 서양의 붓을 과감하게 섞어 새로운 문자 추상, 새로운 회화를 창조해냈습니다.

매번 모든 작품을 집중해서 보지는 못합니다. 엄청난 에너지가 소비되는 일이거든요. 충분히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내 시선을 사로잡는 작품을 마주하고 교감하려고노력합니다. 잠시 뒤로 물러섰다, 가까이 다가갔다가, 서서도 바라봅니다. 작품이 나에게 계속 다른 이야기를 풀어내기도 합니다.

어느덧 시곗바늘이 오후 2시를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미술관 앞 조각공원은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로 북적입니다. 냅다 잔디밭 한 편에 손수건을 깔고 자리를 잡습니다. ‘아~ 여기가 천국이구나!’ 뉴욕 센트럴파크 못지않은 평온한 풍경에 마음이 사로잡힙니다. 주문한 도시락이 도착했습니다. ‘간단히, 맛있게, 무얼 먹을까?’ 한참을 검색하다 선택한 메뉴는 물방울 초밥입니다. 비주얼이 예뻐서 주문했는데, 맛도 굿! 이 뿌듯함은 뭐죠. 뭔가알차게 주말을 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 대전이응노미술관
  • 서구 둔산대로 157 이응노미술관
  • 042-611-9800
놀이가 곧 예술 ‘형태·느낌 놀이터’

엉덩이를 툭툭 털고 일어납니다. 새빨갛고 샛노란 단풍의 유혹을 이겨내고, 엑스포시민광장 2층에 위치한DMA아트센터로 향합니다. DMA아트센터는 어린이를위한 <형태·느낌 놀이터>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어린이는 아니지만,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친구들과 일행인 듯나란히 입장!

이곳은 여러 가지 형태의 작품을 보고, 작품에서 받은 느낌을 표현하는 공간이에요. 유쾌한 놀이처럼 자유롭게요. 전시장 한가운데에 종이상자들이 널려있습니다. 아이들은블록 놀이처럼 쌓았다 무너뜨리기를 반복하며 자유로운 형태를 만들어 봅니다. 또 다른 곳에서는 남매로 보이는아이들이 다양한 모양의 조각들을 이용해 칠교놀이를 즐기고 있네요. 투명한 유리 앞에 마주 앉아 서로의 얼굴을따라 그리는 친구들도 있고요. 말 그대로 ‘놀이터’입니다.

조금 더 색다른 체험을 즐겨볼까요? 즐거운 3가지 미션과함께 미술관 소장의 이용백, 박정선, 박용선 작가의 예술작품을 직접 감상하며 형태를 색다른 시점에서 생각하고체험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미션은 박용선 작가의 ‘빛의형태’. 영상 속 어두운 공간에 하얀 문과 창이 있습니다.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모양을 달리하며 움직입니다. 작품은 질문을 던집니다. 시간에 따라빛의 모양은 어떻게 변화하나요? 화면 속 분위기는 어떤느낌인가요? 이렇듯 지나가는 시간을 이야기합니다. 일상의 시간 속에 지나가는 아름다운 순간을 일깨우고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게 하는 작품입니다. 아이들이 보고 느끼고 이해할 수 있도록 세세한 설명까지 덧붙여집니다.

박정선 작가님의 작품을 활용한 두 번째 미션은 조금 더흥미롭습니다. 관객이 직접 작품에 참여하는 인터렉티브 아트(Interactive Art)입니다. 작품 앞, 노란 사각 테두리 안에 섭니다. 옆으로 왔다 갔다 서서히 몸을 움직이면 작품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직접 체험해보는 것이죠.나의 움직임에 따라 대나무 그림이 바람에 흔들리듯 사르륵 움직입니다.

테이블 위에 예쁜 꽃이 꽂힌 화병 세 개가 놓여 있습니다. 이용백 작가님의 작품을 활용한 세 번째 미션인데요.커다란 영상 속에는 조화로 덮인 배경 속에 보호색 옷을입고 전진해나가는 총을 든 군인들이 보입니다. ‘천사와꽃 – 전사와 전쟁’과 같이 서로 반대되는 것들을 한 작품에 배치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든 것입니다. 아이들은 꽃과 군인을 보고 어떤 생각들을 하게 될까요? 초면인 꼬마 친구와 빈백에 앉아 잠시 들여다봅니다.

이 밖에도 각기 다른 템포의 음악을 들으며 자유롭게 드로잉을 한다거나 선을 따라 몸을 움직이는 등 자신의 몸으로 형태를 만들어보는 경험을 즐길 수 있습니다. 짧은동선이지만, 동심으로 돌아간 듯, 순수한 눈으로 작품을감상하고 체험하게 되는 공간입니다.

  • DMA아트센터
  • 서구 둔산대로 169
  • 042-270-7370
자연을 품은 도시, 자연이 품은 도시

자전거를 탄 사람들이 트랙을 따라 달려갑니다. 인라인스케이트를 타는 어린 친구들도 보이네요. 트랙 가운데는 넓은 그늘 광장입니다. 예술의 전당과 미술관, DMA아트센터까지 한데 모여 있는 것도 놀라운데, 더 놀라운것은 엑스포다리까지 쭉 뻗은 시민광장과 그보다 더 넓은 면적의 한밭수목원이 양옆에 자리한다는 것입니다.

한밭수목원은 이번이 두 번째 방문입니다. 작년 봄, 우연히 서원을 둘러보았다죠. 오늘은 고민 없이 동원으로 향합니다. 4월의 수목원이 신록의 물결이었다면, 10월의수목원은 어떤 색감과 자태를 뽐낼는지 무척 궁금해졌습니다.

동원에 들어서면 초입에 넓은 잔디광장과 어린이놀이터가 나타납니다. 그런데 놀이기구들이 이제껏 보던 것과는 좀 다릅니다. 아이들이 열심히 페달을 밟아 에너지를만드는 자가발전기가 장착된 것인데요. 과학의 도시 대전답죠?(웃음) 곳곳엔 그늘막과 벤치, 테이블이 설치되어 가족 단위의 방문객이 많이 보입니다.

수목원을 제대로 관람하려면 하루는 족히 걸립니다. 그렇기에 방문자들에게 다양한 코스를 추천하고 있는데요. 저도 한참을 고민하다가 650m의 ‘은빛여울길’을 둘러보기로 합니다.

가장 먼저 장미원에 닿았습니다. 5월의 여왕은 10월에도만개해 있네요. 봄 장미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가을 장미특유의 은은한 매력을 뽐내면서 말이죠. 장미만이 아닙니다. 풍성하게 자란 로즈마리며 각종 허브들이 앞다퉈향기를 뿜어내고 있고요. 수목원 곳곳에 온갖 가을꽃들이 만발해 있습니다. 벨벳 느낌의 보라색 꽃이 매력적인 멕시칸 세이지, 겹겹이 귀여운 아스타, 작고 빨간 열매가알차게 매달린 피라칸다, 줄기에 붙어 있는 날개의 생김새가 특이한 화살나무, 하얀 꽃을 피워내는 미국쑥부쟁이 등 가을꽃들이 발길 닿는 곳마다 피어 있습니다.

길을 따라 쭉 내려갑니다. 수목원 끝에 다다르자, 전망대가 하나 나타납니다. 그리 높지 않아서 부담 없이 올라가 보는데요. “와아~” 해가 기울대로 기운 시간이라 수목원 전체가 반짝반짝 빛나고 있습니다. 가운데 연못을두고, 걸어왔던 길과 걸어갈 길이 그림처럼 펼쳐집니다.저 멀리 물레방아와 화목정(花木亭)도 보이네요. 시간이좀 더 여유로웠다면 저곳에 앉아서 편안한 사색에 빠져들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전망대에서 내려와 수변데크에 올라섰습니다. 수생식물원에 들어선 것인데요. 하늘로 쏘아올린 물줄기의 싱그러움이 리듬감을 더하고, 솜털처럼 하얀 꽃을 틔운 갈대가 바람에 일렁입니다. 짹짹짹 족히 열 마리도 더 되어보이는 참새들이 이쪽저쪽을 옮겨 다니며 먹이를 찾느라 분주합니다. 도시에서 참새라니요! 지나가던 아이들도 발길을 멈추고 눈을 떼지 못합니다. 연못엔 개구리밥과 마름, 수련 입자루들이 물 위를 동동 떠다니고요. 큰잉어들이 꼬리를 살랑이며 유유히 헤엄쳐갑니다.

수생식물원 길을 따라 건너가면 핑크뮬리 군락지가 펼쳐집니다. 역시나 가장 많은 사람이 모여 있습니다. 모두인생샷을 제조 중인 듯 이 포즈 저 포즈를 지으며 사진찍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살랑살랑 나부끼는 핑크뮬리옆에는 빨갛게 달아오른 자줏빛 촛불 맨드라미가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계절은 매일, 조금씩, 깊어갑니다. 낯익은 풍경은 그 모습을 달리하며 변화해갑니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해서자연을 찾아 떠날 수밖에 없나 봅니다. 그렇기에, 이렇게가까이에서, 다채로운 자연이 숨 쉬고 있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 한밭수목원
  • 서구 둔산대로 169
  • 042-270-84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