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끼리 드라이브는 대전이쥬
모처럼의 데이트입니다. 집순이 집돌이 커플이 큰맘 먹고 드라이브에 나섭니다. 쪽빛 하늘과 호수, 발그레 물든 숲에서 호젓한 시간을 보내려고요.드라이브 맛집은 따로 있기 마련이죠. 200㎞의 대청호오백리길(둘레길)을 따라 구불구불 이어지는 도로는 어디서든 장관입니다.2020년 봄, 코로나로 몸살을 앓기 시작할 때도 이 길의 벚꽃터널이 아쉬움을 달래주었는데요. 이제 막 물들기 시작한 야트막한가을 산과 수목 사이를 달려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21개의 구간마다 특별한 재미가 있다니 오늘은 어디쯤 내려 걸어볼까요?
- 대청로하스길(21구간)
- 대청댐
- 대청댐물문화관
- 두메마을길(1구간), 두메마을
- 대청호반길(4구간), 슬픈연가 촬영지
- 식장산
스토리텔링
여행준비
도시락과 돗자리를 챙깁니다. ‘가을 소풍 드라이브’가 오늘의 테마이거든요. 그 유명한 둘레길도 안 걸어볼 수는없죠. 선글라스와 마스크, 운동화도 준비했어요. 내비게이션에는 [금강로하스대청공원]을 찍었습니다. 이곳을기점으로 오늘은 대청호의 ‘대전 구간’을 달려보려고 해요. 대청호는 대전시 동구·대덕구, 충북의 청원·옥천·보은군에 걸쳐 조성된 인공호수인데요. 저수량 기준으로우리나라에서 세 번째로 큰 호수이기도 해요. 50만 대전시민과 35만 세종시민 등 중부권에 공급되는 식수·용수가 이 호수에서 나온다니 발원지를 찾아 나서는 기분도 드네요.
대전과 청주를 합쳐 대청(大淸)?
“대전과 청주 사이에 있어서 대청호라는 데 맞아?” 운전대를 잡은 제게 남친이 묻습니다. 위치나 이름이 꽤나그럴듯해 보이지만 ‘땡!’입니다. 1970년대 대청다목적댐을 지을 당시 행정구역이었던 대덕군(대전)과 청원군(충북)의 앞글자를 따 대청호(大淸湖)가 됐다고 해요. 하지만 대전과 청주는 대청호의 입지 결정을 좌우한 키맨이었음은 분명합니다.
지도에서 대청댐이 자리 잡은 금강유역을 보면 긴 병의목처럼 생긴 지형을 가지고 있는데요. 댐이 세워질 수밖에 없는 적지였던 셈이죠.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금강유역은 한해 강수량 중 3분의 2가 여름철 두 달 동안 집중 호우로 쏟아져 내리는데요. 다른 세 계절에는 물 부족현상을 겪기 십상입니다. 인근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도시가 바로 대전과 청주이죠. 댐 건설 당시 통수로 건설비용을 절약한다는 점에서도, 두 대도시와의 인접성이입지결정에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대청댐은 지난 40여년 간 중부지역의 1등 일꾼으로 활약했는데요. 4인을 1가구로 했을 때, 약 3만 가구가 한달간 사용할 수 있는 전기량 9만㎾를 생산할 수 있고, 연간 13억㎥에 달하는 생활 공업용수를 공급하고 있다고해요. 산과 바다, 그리고 땅과 호수. 우리가 언젠가 회귀하는 자연이 결국 생존과 직결된다는 사실은 ‘아름다움’을 넘어서는 것이기도 하지요.
코스 소개
대청호 예술가들이 1등으로 꼽는 아침 안개
바다 없는 내륙도시인 대전과 충북에서 대청호는 두말필요없는 ‘내륙의 바다’입니다. 물가로 이끌리는 강렬한본능은 어디에서 온 것인지 가끔 신기한 일이죠. 물가에서는 뭘 먹어도 맛있고, 무엇을 보아도 좋습니다.
대청호와 맞닿은 동네는 대전 2개 구, 충북 4개 군, 2개읍, 11면에 달합니다. 대전·충북 어디에서나 가깝다는 의미이기도 한데요. 총 21개의 구간 중 1~5구간, 21구간이대전에 속합니다. 1구간에는 대청댐물문화관, 2구간에는 이현동 억새밭과 찬샘마을, 3구간에는 관동묘려와미륵원, 4구간에는 드라마 슬픈연가 촬영지, 5구간에는백골산성, 21구간에는 대청로하스길이 대표적인 볼거리로 꼽힙니다. 1구간의 산책로와 2~4구간의 드라이브, 21구간의 자전거전용도로는 여행의 참맛을 더하는데요.라이더와 걷기족이 앞다퉈 엄지를 치켜세울만 합니다.
우리는 21구간(대청로하스길)으로 향합니다. 대청공원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공원피크닉을 즐긴 다음, 아침의물안개가 일품이라는 수변 데크(해피로드)를 따라 걸어볼 예정이에요. 대청공원은 도시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규모(6만㎡)의 넓은 잔디광장인데요. 대청호와 금강을모두 접하고 있고, 강변을 따라 설치된 470m의 해피로드에서는 간혹 백로가 먹이를 찾아 비상하는 장면도 포착할 수 있습니다. 특히 남친과 함께 보고 싶은 장소가있었는데요. 대청공원에 있는 대청문화전시관을 등지고20분 정도 해피로드를 걸으니, 물속에 반쯤 잠긴 왕 버드나무 군락지가 안개와 함께 신비로운 모습을 드러냅니다. 도심에서 대청호로 이사 온 예술가들이 많은데요.이들이 대청호에서 단연 1등으로 꼽는 풍경이기도 해요.남친은 <반지의 제왕> 속 세트장 같다며 연신 감탄사를터뜨립니다.
- 대청로하스길(21구간)
- 충청북도 청원군 문의면 덕유리 산84-2
대청댐 뷰가 가장 좋은 곳
주차장으로 다시 돌아와 대청댐을 보러 가기로 했습니다. 대청공원과도 지척이죠. 운이 좋으면 폭포처럼 쏟아내는 방류 장면을 보게 될지도 모릅니다. 댐 뷰가 가장좋은 곳은 대청교예요. 수문을 마주하는 대청교 교각 위에서는 총 6개의 수문을 정확히 정면에서 조망할 수 있습니다. 특히 야간에는 수문의 조명이 켜지면서 흔치 않은 야경을 선물하죠. 오늘 운이 좋았냐고요? 2020년 여름 긴 장마 기간 동안 대청댐이 8년 만에 수문을 개방했다고 하는데요. 강수량이 줄어버린 가을이라 아쉽게도시원한 방류 장면은 보지 못했습니다. 이외에도 댐 뷰가좋은 곳으로는 현암사 길목의 나무데크전망대, 오가삼거리 나무데크길 등이 있으니 기분대로 골라가면 좋습니다.
대청댐 본댐이 위치한 곳은 대전 대덕구 미호동(渼湖洞)인데요. 미호동의 동쪽에서 북서쪽으로 휘감아 도는 금강의 모습이 호수 같고 매우 아름답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에요. 동네가 생긴 것이 대청댐보다 먼저였으니, 마치 댐과 인공호수가 생길 것을 예견이라도 한 것 같죠?
철갑상어부터 수몰민 이야기까지
“대청호에 상어가 있다고?” 대청호 하류에 철갑상어가살고 있다고 하니 믿지 못하는 눈치입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죠. 직접 보여주기 위해 물문화관으로 이끌었습니다. 물문화관은 원래 있었던 대청댐 물홍보관을 증축하면서 2004년 7월에 새롭게 문을 열었어요. 수자원의소중함을 알려주는 제1전시관, 대청호와 금강에 사는 생물의 서식환경을 소개하는 제2전시관, 대청댐 건설로 사라진 수몰민의 삶을 기록한 제3전시관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전망대에서는 망원경으로 대청댐을 조망할 수있습니다.
제1전시관에서는 체험 전시가 마련돼 있는데요. 체내 수분량 측정기나 대기오염물질을 잡는 게임이 의외의 즐거움을 줍니다. 제2전시관의 수족관에는 실제 대청호와금강에 살고 있는 생물을 볼 수 있어요. 금강 상류부터하류까지 16종의 민물고기 사이에서 철갑상어를 발견한 남친이 호들갑을 떱니다. 강물과 바다를 오가며 서식하는 종이라는 건 저도 사실 처음 알았는데요. 서해 연안으로 유입되는 강 하구에 분포돼 있다고 해요.
수몰민 이야기로 채워진 제3전시관에서는 ‘우리가 얻은것과 잃은 것’에 대해 다시 한번 곱씹게 됩니다. 대청댐건설로 큰 효과를 얻었지만 부작용이 없었던 것은 아니죠. 이 지역의 연간 안개 일수가 늘어난 데다 가뭄이 지속되면 호수에 적조 현상이 일어나곤 합니다. 무엇보다4,075세대 2만 6,000명이 넘는 이 지역 주민들이 삶의터전을 잃고 떠나야만 했지요. 댐 준공을 앞두고 이주할수밖에 없었던 주민들은 인근 도시와 전국으로 옮겨갔는데요. 이주민들은 호숫가에서 사라진 고향땅을 그리워하거나, 호수 한가운데 섬이 돼버린 산봉우리로 배를타고 성묘를 가는 낯선 풍경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실향민은 그리워할 고향이라도 있지’라는 수몰민의 회한은 좀처럼 헤아려지지 않습니다. 전시관에는 당시 이 지역 사람들이 살던 모습이 사진으로 남아있는데요. 그리움을 남몰래 달래고 있을 마음 언저리가 만져지는 것 같습니다.
- 대청댐물문화관
- 대덕구 대청로 618-136
- 042-930-7332~3
두메마을과 도자기 공방
벌써 정오네요. 오후에는 두메마을 ‘도자기 공방’에 도예체험을 예약해둔 터라 발걸음이 바빠집니다. 대청댐에서 두메마을 가는 길(1구간 두메마을길)은 봄철 긴 벚꽃터널로도 유명하죠. 가을녁 그윽한 낙엽길은 그만의 운치가 있습니다. 봄이 낭만길이라면 가을에는 분명 ‘서정적인 길’일 거라고 표현해두죠. 또다시 물에 이끌리듯 발그레한 수목 사이를 내달립니다.
두메마을은 대전의 대표적인 농촌체험마을이자, 매년 가을 호박축제로도 유명한 마을이지요. 도자기 공방 간판이 없었다면 찾기가 쉽지는 않은데요. 여느 관광지들과다른 대청호의 매력 중 하나에요. 손꼽히는 관광지 모두고요하면서 힘있게 존재감을 증명하고 있죠. 두메마을도초입만 지나치면 유쾌한 풍경들이 방문객을 맞이합니다.올망졸망 시골집들과 함께 펼쳐진 황금 논에 눈길이 선해지고요. 거대한 호박과 물고기 조형물도 시선을 끄는데요. 예술가들이 하나둘 대청호에 터를 잡으면서 생긴변화이기도 해요. 매년 호박축제를 여는 늪지 쪽으로는주렁주렁 박이 매달린 터널도 세워 놓았어요.
‘그림 같은 집’. 대청댐 근처 도자기 공방의 첫인상이었습니다. 도자기 체험을 하는 공방, 예술가 부부의 작품을전시해둔 카페, 도자기를 말리고 굽는 가마터까지 모두예술가 부부의 두 손으로 지어 올렸습니다. 오늘 저희는대청호에 서식하는 감돌고기 모양의 풍경을 만들어보기로 했어요. 직접 반죽을 빚거나 물레를 돌려볼 수도 있지만, 오늘은 색을 칠해보는 체험을 선택했습니다. 채색을 하고 있으면 아뜰리에 대표님이 넌지시 말을 걸어오는데요. 색으로 드러나는 심상을 읽어주는 말씨가 가을햇살처럼 따스합니다
채색을 마친 풍경은 이곳에서 몇 차례 공정을 거치는데요. 잘 말리고 덧발라 구워서 완성된 풍경은 택배로 부쳐주신다고 합니다. 풍경을 채색하고 풍경 안에 들어가는 악세서리를 만드는데 걸린 시간은 1시간 반. 뚝딱뚝딱 잘하는 남친과 달리 초반에 어떤 색을 칠할 지 고민을 좀 했는데요. 대표님의 도움으로 제 풍경도 마음에쏙 들게 완성했습니다. 주차장에는 오늘 우리가 만든 것과 비슷한 풍경들이 달려있는데요. 공정여행으로 두메마을을 방문한 이들과 이곳 주민들이 손수 만든 작품이라고 해요. 하늘강 도자기 체험 - 18가지 반찬의 소쿠리밥상 - 가마솥 군불때기 - 제철 음식만들기(쑥개떡, 두부 등) 등으로 구성된 프로그램을 다음번으로 기약하면서 마을을 나섭니다.
- 두메마을길(1구간), 두메마을
- 대덕구 이현동 187
- 010-9116-2705
해변이야 호반이야?
슬픈연가, 트루픽션, 7년의 밤, 창궐. 이들 영화와 드라마의 공통점은? 대청호가 꼭 한 번은 배경으로 등장한다는 것인데요. 이중 슬픈연가 촬영지는 아름답기로 유명합니다. ‘영화 촬영지’라는 간판만 덩그러니 붙은 곳들과는 차원이 다른데요. 앞서 대청호가 내륙도시의 목마름을 달래주는 바다라는 표현을 했죠. 슬픈연가 촬영지에서는 그저 비유가 아닙니다. 인공호수가 만들어낸 독특한 지형 덕에 하얀 모래사장 끝에서 호반의 물이 손 끝에 닿습니다. 어떤 각도로 바라봐도 모두 그림이 되고말죠. 전국 곳곳을 뒤지며 아름다운 로케이션 헌팅을 다니는 영상인의 안목을 제대로 체감할 수 있는데요. 차를대놓고 걸어 들어가는 1㎞ 남짓의 억새풀 숲은 비밀스럽기 그지 없습니다. 느닷없이 나타나는 외딴 벤치, 사연이라도 품은 듯 물 밖으로 나온 조각배, 이제는 막혀버린우물까지. 마치 모든 것이 연출된 듯 마음이 간지럽습니다. 슬픈연가 촬영지가 사랑받으면서 그 옆으로 명상정원, 물속마을 정원을 조성해 더 많은 볼거리가 기다리고있습니다.
- 대청호반길(4구간), 슬픈연가 촬영지
- 동구 마산동 483번지
쇼핑과 야경으로 마무리 데이트
대청호를 하루에 정복하겠다는 건 욕심이죠. 호반을 뒤로하면서 대청호 여행 로드맵을 세웁니다. “21구간을 3구간씩 나눠서 9번을 와보자”는 게 우리 커플의 결론.오늘 데이트는 야경으로 마무리하기로 했습니다. 식장산 야경은 대전 토박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인데요. 부산서 나고 자란 남친에게도 꼭 보여주고 싶었어요. 산길을 힘겹게 오르지 않아도 대전 시내를 한눈에담을 수 있는 덕에, 인스턴트식 해돋이 단골 장소가 되기도 했죠. 내비게이션에도 [식장산 해돋이] [식장산 해돋이전망대]를 검색하면 빠릅니다.
식장산(食藏山)이라는 이름에는 두 가지 전설이 전해지고 있어요. 삼국시대 국경의 요충지로, 백제 군사들이 군량미를 저장하고 싸움을 했다는 전설이 그중 하나이고요. 그 옛날 이 산에는 가난하고 착한 농부가 두 아들을데리고 살고 있었는데, 한 줌 쌀이 몇 배로 불어나는 식기가 뭍혀 있어 식장산이라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10분남짓 꼬불꼬불한 산길을 오르며 나누기 좋은 이야기이죠? 정상에 이르니 자정이 다 된 시간에도 옹기종기 커플들이 모여있네요. 한눈에 담는 도시의 밤이 불꽃놀이라도 하듯 반짝거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