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 살아 숨 쉬는 대전이쥬
여행은 늘 좋지만, ‘편식’하다 보면 지겨워지기도 하지요. 제아무리 좋은 꽃구경이라도 늘 그것만 보면 감흥이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이번 저의 여정은 편식했던 여행 주제를 바꿔보고자 하는 데서 시작됐습니다. ‘가을이면 단풍 보고, 봄 되면 꽃 보러 가야지’하는 ‘뻔한’ 여행에서벗어나 보고 싶었다고 할까요. 찬찬히 걸으면서 사유할 수 있는, 잰걸음 보다는 느린 걸음으로 돌아볼 수 있는 곳들을 찾아볼 생각입니다.
- 회덕향교
- 쌍청당
- 동춘당
- 계족산 황톳길, 계족산성
- 계족산성
스토리텔링
여행준비
계족산 인근에 자리한 선비문화가 담겨있는 유적지를 돌아본 뒤, 계족산 황톳길 산행으로 일정을 잡았습니다. 황톳길은 맨발로 걸을 계획이기에 여분의 양말과 수건 등을챙겼습니다. 산에서 점심을 해결해야 할 것 같아 김밥 두줄과 물, 초코바 몇 개도 배낭에 야무지게 넣었고요. 시간이 맞는다면 계족산성에 올라, 야경까지 보고 올 생각이어서 가벼운 랜턴과 추위를 막아줄 바람막이 아우터도 하나 챙겼습니다. 이제 떠날 준비가 된 것 같네요.
코스 소개
조선시대 ‘열공’의 공간
뒤로는 계족산, 앞으로는 보문산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터에 회덕향교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향교는 조선시대 지방에서 유학을 가르치던 교육기관입니다. 산자락에 자리한 이곳에서 학문에 정진했을 젊은 학자들의 모습이 그려지는 듯합니다. 회덕향교가 명소인 이유는 조선시대 유학자인 우암 송시열과 동춘당 송준길이 수학했던 곳이기 때문이지요. 이 작은 공부터에서 걸출한 학자가 두 명이나 배출되다니, ‘터’가 좋은 것도 한몫 하지않았을까요. 두 명산에서 전해지는 청량한 기운에 저까지 머리가 개운해지는 느낌이니 말입니다.
회덕향교 입구는 외삼문이라고 부릅니다. 이름처럼 3개의 문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드나들 때 오른쪽으로 들어가 왼쪽으로 나와야 한다고 하네요. 가운데 문은 신이드나드는 곳이라 사람들의 출입은 금해졌다고 합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또 다른 문이 보입니다. ‘입덕문’이라 불리는 이 대문은 학문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 넘어야 하는 경계로 설명됩니다. 세속적인 것과 거리를 두고학문에 정진하겠다는 의지를 다지는 문이기도 하지요.입덕문 옆으로는 요즘 기숙사에 해당하는 고직사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고직사를 지나면 비로소 명륜당이 보입니다. 옛 선비들의 치열했던 수학의 공간은 소박해 보이지만, 힘이 느껴지네요. 현재까지 다양한 유학 관련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그 맥을 이어가고 있어 더욱 의미가있습니다.
명륜당을 지나 10단의 계단을 오르면 내삼문이 나오고,그 문 안쪽으로는 제사를 지내던 대성전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공자를 포함해 중국과 우리나라 학자들의 위패를 모셔 놓은 곳입니다. 단순히 앉은 자리에서 강학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제(祭)를 통해 성현들의 인격까지 닮아가고자 한 선비들의 수고가 느껴집니다. 한창 공부하는 아이들과 함께 찾아 기운을 받고 가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네요.
- 회덕향교
- 대덕구 회덕동 대전로1397번안길 126
- 042-628-2021
화려한 단청이 깃든, 조선시대 별당
회덕향교에서 차로 10분쯤 도심 방향으로 내려오면, 대전유형문화재 제2호 쌍청당에 도착합니다. 쌍청당은 조선시대 유학자인 송유의 별당입니다. 아파트 단지들 사이에 고즈넉하게 자리 잡아 시간여행을 온 듯한 느낌마저 듭니다. 쌍청당은 ‘청풍과 명월의 기상을 가슴에 새긴다’라는 의미로 박팽년이 붙여준 별당 이름이라고 하네요. 박팽년은 잘 알다시피 사육신 중 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쌍청당은 아직 후손들이 거주하고 계신 공간이기도 합니다. 쌍청당 안으로 들어서서 정면과 좌측은 방문이 조심스럽지만, 우측 길로는 누구나 거닐어볼 수 있습니다.대문 하나 통과했을 뿐인데 벌써부터 다른 세상에 온듯, 공기의 기운마저 낯설어지는 듯합니다. 아담한 우물을 지나면 봉우정이라는 작은 정자가 보입니다. 가을 단풍이 깃든 이곳은 고화(古畫) 속 한 장면마냥 감동을 줍니다.
쌍청당에서 대학생 방문객 한 팀을 만났습니다. 사진도찍고, 열심히 메모하는 모습이 반가워 인사를 건넵니다.인근 대학에서 건축을 공부하는 학생들이라고 하네요.이 젊은 선생님들로부터 쌍청당에서 단청을 잘 살펴봐야 하는 이유에 대해 들었습니다. 단청은 목조건물에 화려하게 색을 입힌 양식을 말하지요. 민가에 화려한 단청이 입혀진 게 특이하다고 생각되긴 했는데, 고려시대 건축양식이 조선 전기까지 이어진 까닭에서라고 하네요.세종 11년 단청에 대한 제한이 생기고, 단청과 같은 화려한 기법들이 더 이상 쓰이지 않게 되었다고 합니다. 아마 절제를 미덕으로 삼던, 유교적 가르침의 영향이었겠지요. ‘하늘 아래 스승 아닌 것이 없다’ 하더니 우연히 만난 인연들로부터 좋은 가르침을 얻었습니다. 이들을 만나지 못했다면, 그저 별당 툇마루에서 볕이나 쬐다 왔을텐데 말이죠.
절제와 검소의 미학
쌍청당에서 동춘당까지는 걸어서 10분 정도 거리, 지척입니다. 동춘당은 조선 효종 때 병조판서를 지낸 송준길이 살았던 집입니다. 동춘당은 ‘살아 움직이는 봄과 같아라’라는 뜻으로 송준길의 호에서 따온 이름이라고 하네요. 낮은 담장을 지나서 대문 안으로 들어섭니다. 현판은송준길 사후 우암 송시열이 썼다고 합니다. 생전에 양송(兩宋)이라 불리며 각별한 사이로 지내던 이의 마지막선물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쌍청당은 고려의 건축기법으로 지어져 단청과 같은 화려한 기교가 입혀진 반면, 동춘당은 절제의 미학이 그대로 전해집니다. 조선시대 이름을 날린 양반가지만, 별다른 꾸밈없이 수수한 외관이 인상적입니다. 대문을 들어서면 일자 모양의 사랑채가 보입니다. 동춘당은 나지막한 단 위에 정면 3칸, 측면 2칸이 구조입니다. 드라마에서 보면 양반가 사람들이 높은 단위에 서서 ‘네 이놈~’하며 호령하던데, 그 모습과는 사뭇 다르네요.
동춘당은 여느 옛 여염집과는 달리 굴뚝을 따로 달지 않은 것도 특징입니다. 초석 높이에 자그마한 구멍을 뚫어연기가 빠져나가도록 만들어 놓았네요. 불을 지피는 것조차 눈치를 살핀 것일까요. 백성들과의 눈높이를 유지하고, 검소하고 낮은 자세로 살기 위해 노력한 유학자들의 진심이 아닐까 싶습니다.
별당으로 쓰인 동춘당 뒤편으로 종택이 있습니다. 직접살림을 하며 지내던 곳으로 사랑채, 안채, 사당, 부엌, 행랑방 등이 ‘디귿’자 모양으로 이어져 있네요. 내가 걷고,만지는 이 길과 돌담이 수 세기를 넘어 공유되고 있다는 것이 마음 한 켠을 찡하게 합니다. 그들의 하루하루가 쌓여 역사가 되었듯, 저도 제 나름의 일상을 충실하게 지내고자 하는 에너지가 생기네요. 켜켜이 쌓인 시간이 건네는 위로가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시간을묵묵히 지내온 고택이 주는 ‘힐링’인 듯싶네요.
- 동춘당
- 대덕구 동춘당로 80
- 042-608-6114
맨발로 느끼는, 흙 에너지
‘안 가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가 본 사람은 없다’는 계족산 황톳길. 저는 전자에 속하는 ‘안 가본 사람’입니다.주변 사람들이 다녀온 뒤, 열심히 추천해준 덕에 ‘한 번가봐야지’라는 마음만 먹고 있다가 이제야 행동으로 옮기네요. 여러 번 다녀온 지인이 황톳길을 거쳐 계족산성까지 가려면 ‘장동산림욕장’ 주차장으로 가라고 알려줘서 그곳으로 향합니다. 주말에는 차가 넘쳐 길가까지 행렬이 이어진다는데 다행히 평일이라서인지 주차공간도넉넉합니다.
입구에서 오늘 걸어야 할 길들을 체크하고 본격적인 산행에 나섭니다. 바스락거리는 낙엽을 밟으며 등산로를따라 걷다 보면, 지나치기 힘든 군것질거리들이 나타납니다. ‘계족산도 식후경’이지요. 집에서 챙겨온 김밥과 함께 먹을 커피 한 잔과 구운 계란을 사서 챙깁니다. 가장먼저 보이는 벤치에 낮아 허기진 배를 채워봅니다. ‘혼밥’하는 등산객이 쓸쓸해 보이는지 오가는 사람들의 눈길이 자꾸 날아와 꽂히네요. 관심을 즐기는 편이 아닌지라,서둘러 욱여넣고 자리를 털고 일어섰습니다. 식사를 챙겨오지 않아도 간단한 요기 거리들은 판매되고 있으니이곳에서 배를 채우고 등산을 시작하셔도 좋겠네요.
“혼자 오셨는가?” 할아버지 한 분이 귤 하나를 건네십니다. 그러고는 저를 제치고 앞으로 나가시네요. ‘무심한듯 시크하게’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싶습니다. 등산을하다 보면 젊은 사람에게 뭐라도 하나씩 건네주고 싶어하는 어르신들을 종종 만납니다. 혼자 걸어도 심심치 않은 건, 이런 ‘동행인 듯 동행 아닌’ 분들을 만나기 때문인듯합니다.
드디어 고대하던 황톳길이 보이네요. 가방에 신발과 양말을 집어넣고 서둘러 한 발짝 떼봅니다. 이야기로만 전해 들었던 황톳길에 저도 첫발을 디디는 역사적(?) 순간입니다. 첫 느낌은 ‘서늘하다’ ‘낯설다’일 것 같네요. 늦가을에 접어든 탓인지 황톳길에서도 역시 차가운 기운이전해집니다. 황토는 왠지 언제나 따뜻할 줄 알았는데, 역시 뭐든 경험해봐야 정확한 정보를 알 수 있습니다. 서늘한 기운을 참으며, 그리고 맨발로 걸어본 적은 처음인 듯생경한 기분을 느끼며 황톳길 걷기를 시작합니다. 저도자연과 더불어 유년 시절을 보냈다고 자부했건만, 완벽한 맨발 상태로 길을 걸어본 건 아마도 처음이지 싶네요.
이질적인 발바닥 느낌을 견뎌가며 걷다 보니, 이제 바닥을 슥슥 비비고 걷는 여유도 생깁니다. 중간 중간에 세족장이 있어서 가다가 힘들면 발을 씻고 등산로로 갈아탈 수도 있습니다. 노랗게 익어가는 단풍도 보고, 포토존으로 꾸며놓은 곳에서 셀카도 찍으며 맨발 산행을 즐겨봅니다. 가다 보면 제법 큰 놀이터도 있네요. 아이들과함께 황톳길, 놀이터 코스로 찾아도 가족 여행으로 좋을듯합니다.
황톳길을 벗어나 계족산성으로 방향을 잡습니다. 끝도안 보이는 계단이 저를 맞아주네요. ‘실수했나’ 싶지만어쩌겠습니까. 여기까지 온 이상, 가야지요. 허벅지가 뻐근해지는 고통을 견디고, 또다시 오르막길을 헤치고 오르다 보면 먼 시야에 계족산성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산성까지 오르려면 한참을 더 올라야 하지만 그래도 눈앞에 목적지가 보이면 다리가 한결 가벼워집니다. 아래를내려다보며 풍경에 감탄할 여유도 생기고요.
계족산성은 백제시대 만들어진 석축산성입니다. 넓적넓적한 돌들을 쌓아 올려 두께 4미터, 높이 7~10미터, 길이는 1킬로미터에 달하는 구조물을 만든 거지요. 사람의손으로 하나하나 쌓아 올렸을 텐데, 얼마나 고단한 노력이 이곳에 녹아있을지 짐작도 안 갈 정도입니다. 고작계단 몇 개 올라오면서 온갖 곡소리를 한 게 민망해지네요. 장엄한 규모의 계족산성을 한 바퀴 돌며, 발아래 펼쳐진 경관을 눈에 담아 봅니다. ‘이 맛에 산에 오지’를 몇번이나 되뇌면서 말이죠.
달빛 품은 산성에서
오후 느지막한 시간에 산에 오른 건 다 계획이 있어서입니다. 계족산성에서 보는 야경이 훌륭하다는 이야기를풍문으로 전해 들었기 때문이죠. 힘들게 오른 산인데, 해볼 수 있는 건 다 해봐야지요. 오후 5시를 넘어가니 제법찬바람이 파고들어서 바람막이 자켓을 꺼내 입었습니다. 경량패딩을 준비해온 분도 보였는데, 그분이 조금 부럽더군요. 해가 넘어가기 시작하니, 생각했던 것보다 더춥습니다.
운이 좋게 날이 참 좋아서, 노을이 너무 멋집니다. 깨끗한시야로 선명하게 노을을 바라보는 게 얼마 만인가 싶네요. 도시를 삼킬 듯 붉게 물들여가는 이 시간이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찰나의 순간처럼 지나갔지만, 그 여운이 길게 남을 듯합니다. 해가 넘어간 후에는 쪽빛 하늘의 시간입니다. 캄캄한 밤보다는 해는 졌지만, 그 여운이 남아있는 쪽빛 밤하늘이 참 좋습니다. 이 시간도 길지 않아, 집중하지 않으면 놓치기 십상이죠. 사진가인 친구가 ‘이때사진을 찍으면 예쁘게 나온다’라고 한 말이 생각나 야경사진 몇 장 남겨봅니다. 전문가는 아닌지라, 사실 저는 별차이는 모르겠네요. 카메라로 찍은 사진보다 제 눈에 담긴 모습이 더 멋진 듯합니다. 오돌오돌 떨면서도 이 순간과 작별하기 아쉬워 버텨보다 산 아래로 향합니다. 랜턴을 준비해 오길 잘했네요. 야경까지 보려면, 랜턴과 방한용품을 꼭 챙겨야 할 듯합니다. 고된 산행이긴 했지만, 그이상의 추억을 간직하게 해준 멋진 시간이었습니다.